요약

“어촌 해변에서 주운 페트병을 녹여 3D프린터 필라멘트로 만들고, 그걸로 굿즈를 만들어 가져가는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는 한 문장에서 출발해, 하루 만에 41쪽짜리 사업기획안(20장 + 별첨, 표 52개, 도면 4장)을 한글 파일로 뽑았다.

핵심은 문서를 빨리 만든 것이 아니다. AI에게 조사를 먼저 시켜 “그대로 하면 실패하는 지점”을 찾아낸 것이다. 처음 구상대로 설계했다면 현장에서 거의 확실히 망가졌을 세 가지를 문서 앞부분에서 걸러냈다.

왜 이 기술인가

마을 사업을 하다 보면 “이런 걸 해보고 싶다”는 구상은 늘 있는데, 공모사업에 낼 만한 기획안으로 만드는 데서 막힌다. 장비가 얼마인지, 전기가 얼마나 드는지, 법에 걸리는 건 없는지를 한 사람이 다 알 수 없기 때문이다.

AI는 이 조사를 대신할 수 있다. 다만 시키는 방식이 결과를 가른다. “기획안 써줘”라고만 하면 그럴듯한데 현장에서 안 돌아가는 문서가 나온다.

단계별 따라하기

1단계 — 기획 전에 “되는지”부터 조사시킨다

가장 중요한 단계다. 이번 건에서 조사로 드러난 것들:

  • PET는 3D프린팅 소재로 까다롭다. 펠릿으로 녹여 뽑으려면 160℃에서 46시간 건조해 수분을 50ppm 미만으로 맞춰야 하고, 열을 받을 때마다 분자량이 떨어져 품질이 불안정해진다. 산업용 제습건조기만 7001,200만원이다.
  • 가로세로 30cm 출력물은 출력에만 10~20시간이 걸린다. 반나절 체험으로 가져갈 수 없다.
  • 건조에 30분 이상 걸려 그날 씻은 병을 그날 못 쓴다.

셋 다 “구상 자체가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설계를 바꾸면 되는 문제였다.

  • 녹여 뽑는 대신 병을 띠로 잘라 가열 구멍으로 당겨 뽑는 방식(리본 인발)으로 가면 장비가 대당 45~90만원이고 고온 건조가 필요 없다. 게다가 병이 실로 변하는 게 눈에 보여 체험 가치가 훨씬 높다.
  • 30cm급은 마을 공동작품·야간 무인출력·유료 택배로 돌리고, 개인 수령은 20~40분짜리 소품으로 한정한다.
  • 건조는 “앞 회차가 준비해 둔 병을 쓰고, 당신은 다음 팀을 위해 준비한다”는 바통 구조로 설계하고 이것을 프로그램에서 드러낸다.

교훈: AI에게 “이거 되나?”를 먼저 물어라. “이거 기획서로 써줘”는 그다음이다.

2단계 — 숫자는 물질수지부터 잡는다

“페트병으로 굿즈를 만든다”는 말은 검증이 안 된다. 다음처럼 쪼개야 예산도 홍보문구도 정직해진다.

단계수치
500ml 공병 중량12~18g
몸통만 사용(수율)60~70%
병 1개당 필라멘트911g / 34m
열쇠고리 1개병 1개
회차당(20명) 수거량40~100kg
그중 PET5~15%
실제 체험에 쓰는 양수거량의 3~10%

마지막 줄이 중요하다. 이 숫자를 알고 나면 “주운 것을 전부 굿즈로 만듭니다”라고 쓸 수 없다. 대신 **“주운 것 중 내 손으로 골라낸 병이 내 굿즈가 됩니다”**로 바꿨다. 나중에 “친환경 포장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을 때, 과장하지 않은 것이 최선의 방어가 된다.

3단계 — 불리한 결론을 그대로 적는다

추정 손익을 뽑았더니 이렇게 나왔다.

항목금액
연 매출(방문객 2,100명)9,778만원
영업이익(현금)+903만원
감가상각−1,539만원
세전이익−636만원

즉 체험료만으로는 장비값을 회수하지 못한다. 이걸 숨기고 싶어지지만, 그대로 적고 대응을 함께 썼다.

  • 자본지출(장비·시설)은 어촌신활력증진사업 등 공적 재원으로 충당하고, 운영만 체험료로 자립한다.
  • 체험객이 마을에서 쓰는 식음·숙박·수산물 구매를 1인당 15,000원만 잡아도 연 3,150만원 — 연계 매출까지 포함해 평가한다.

공모 심사에서 “지속가능성”을 보는 이유는 장밋빛 숫자를 보려는 게 아니라 계산을 해봤는지를 보려는 것이다. 손익분기(현금 1,800명 / 감가 포함 2,350명)를 명시한 쪽이 강하다.

4단계 — 법·안전은 “개시 조건”으로 따로 뺀다

AI에게 관련 법령을 훑게 하면 빠지기 쉬운 것들이 나온다.

  • 3D프린팅 서비스 제공은 「삼차원프린팅산업 진흥법」상 신고·안전교육 이수 대상일 수 있다.
  • 수거한 해양쓰레기를 가공하는 행위가 「폐기물관리법」상 처리업 대상인지 지자체마다 해석이 갈린다.
  • 프린터를 다수가 머무는 공간에 모아두려면 국소배기·환기가 선행 공사여야 한다(교육부·과기정통부 3D프린터 안전이용 가이드라인).

여기서 중요한 태도: AI의 법률 요약을 결론으로 삼지 않는다. 기획안에는 “항목별로 관할 기관에 서면질의하라”고 적고, 리스크표에서 폐기물 취급 해석을 1순위 리스크로 올렸다. 구두 답변에 의존하지 말고 회신을 문서로 받아두라는 것까지.

5단계 — 도면은 인쇄 크기로 검증한다

체계도·배치도를 AI에게 그리게 했는데, 화면에서 멀쩡하던 그림이 인쇄하면 4.5pt로 찍혀 읽을 수가 없었다. 계산식은 이렇다.

인쇄 글자 크기(pt) = 폰트 px ÷ 캔버스 px 폭 × 본문폭(mm) ÷ 25.4 × 72

A4 본문폭 164mm에 꽉 채우는 그림이라면 캔버스 1000px에 본문 20px이 기준선이다(9.3pt). 넓은 캔버스에 많이 담을수록 글씨가 작아지므로, 한 행에 3~4칸까지만 두고 넘으면 2행으로 쪼갠다. 5단계 공정은 3+2로, 7개 존 배치도는 4+3으로 나눴다.

확인은 눈이 아니라 PDF 실측으로 한다. 그림 폭을 mm로 재서 위 식에 넣으면 끝난다.

6단계 — 제품 사진은 자리만 비워둔다

장비 사진을 넣고 싶었지만 제조사 제품 사진은 저작권이 있다. 공모사업 제출본에 출처 없이 쓰면 심사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사진 칸을 비운 표 + 참고 제품명 + 확인 경로(URL)**를 넣고, 견적받을 때 업체에서 받은 이미지나 직접 촬영한 사진을 붙이도록 안내했다. 대신 공정·배치·단면은 직접 그려 넣었다 — 저작권 문제도 없고 심사에도 더 유리하다.

7단계 — 공급처는 “직접 열어본 곳”과 “검색 후보”를 구분한다

별첨에 국내 13곳·해외 7곳을 정리하면서, 제품 페이지를 실제로 열어 취급 품목과 연락처까지 확인한 두 곳만 그렇게 표시했다. 나머지는 “검색으로 확인한 후보이므로 발주 전 개별 확인 필요”라고 적었다.

AI가 찾아준 업체 목록을 그대로 확정 정보처럼 문서에 넣으면, 나중에 전화했을 때 취급 품목이 다른 일이 생긴다. 확인 수준을 문서에 명시하는 것이 정직하고 실용적이다.

교훈

  1. “되는지”를 먼저 묻는다. 기획서 작성을 먼저 시키면 실패하는 설계가 예쁘게 포장돼 나온다.
  2. 물질수지를 잡으면 홍보문구가 정직해진다. 숫자가 없으면 과장하게 되고, 과장은 나중에 비판으로 돌아온다.
  3. 불리한 결론을 적는 쪽이 강하다. 적자가 나온다면 적고, 그래서 재원 구조를 어떻게 짤지를 함께 쓴다.
  4. AI의 법률 요약은 출발점이지 결론이 아니다. 서면질의로 회신을 받아두는 단계를 일정에 넣는다.
  5. 그림은 인쇄 크기로 검증한다. 화면에서 읽히는 것과 종이에서 읽히는 것은 다르다.
  6. 확인 수준을 문서에 적는다. “직접 확인” / “검색 후보”를 구분하면 문서의 신뢰도가 올라간다.

참고

  • 「삼차원프린팅산업 진흥법」 — 서비스사업 신고·안전교육 의무
  • 교육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 「3D프린터 안전이용 가이드라인」 — 밀폐·국소배기·공간분리·전체환기·MSDS 게시·보호구 지급
  • 해양수산부 어촌신활력증진사업 / 어촌체험휴양마을 고도화사업 공모
  • Precious Plastic — 분쇄기 도면 무료 공개 (preciousplastic.com)
  • 사용 스킬: hwpx-powershell-edit (경로 D 문서 조립, 경로 H hwp 변환, 경로 I 그림 삽입)

문서 정리 = 데카(deka2026)